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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시 맘

by PhilosQ 2018. 4. 6.



함석헌
  

맘은 꽃
골짜기 피는 난
썩어진 흙을 먹고 자라
맑은 향을 토해
  
맘은 시내
흐느적이는 바람에 부서지는 냇물
환란이 흔들면 흔들수록
웃음으로 노래해
  
맘은 구름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한 때 한 곳 못 쉬건만
늘 평안한 자유를 얻어
  
맘은 높은 봉
구름으로 눈물 닦는 빼어난 바위
늘 이기건만 늘 부족한 듯
언제나 애타는 얼굴을 해
  
맘은 호수
고요한 산 속에 잠자는 가슴
새벽안개 보드라운 속에
헤아릴 수 없는 환상을 길러
  
맘은 별
은하 건너 반짝이는 빛
한없이 먼 얼굴을 하면서
또 한없이 은근한 속삭임을 주어
  
맘은 바람
오고감을 볼 수 없는 하늘 숨
닿는 대로 만물을 붙잡아
억 만 가락 청의 소리를 내
  
맘은 씨알
꽃이 떨어져 여무는 씨의 여무진 알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또 온갖 형상의 어머니
  
맘은 차라리 처녀
수줍으면서 당돌하면서
죽도록 지키면서 아낌없이 바치자면서
누구를 기다려 행복 속에 눈물을 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