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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신학

밤중에 찾아 온 친구

by PhilosQ 2012. 5. 1.

 

밤중에 찾아 온 친구1.hwp

 

밤중에 찾아 온 친구(11:5-8)

김성규

 

 

1. 들어가며

설교시간에 수없이 들어 온 내용이고 머리 속에는 이미 선입견이 자리 잡은 본문이다. 기도에 관한 내용으로 이해되고 또한 간청하면 그 간청함으로 인하여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보통 이해되는 본문이기도 하다. 과연 이 본문의 비유가 그러한가? 의구심으로 그동안의 선입견에서 벗어나보려는 시도로 시작하고자 한다.

 

2. 연구사

많은 주석가들이 본문에 대한 연구를 했고 그 연구의 결과물 또한 다양하다. 역사적 시간 순이나 각 비평법에 따라 분류를 하지 못했으나 대표적으로 어떻게 이 비유를 해석했는지 개괄해보고자 한다.

예레미아스는 예수의 비유에서 본문의 제목을 밤에 도움을 간청받은 친구의 비유로 명명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예레미야스는 간청하는 친구가 아닌 간청을 들어주는 친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너희 중에 누가”(ti,j evx u`mw/n11:5)를 이 비유의 해석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너희 중에 누가”(ti,j evx u`mw/n11:5)단연 아무도! 불가능하다!” 혹은 누구에게나 자명하다는 강력한 대답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6:27; 12:25; 7:9; 11:11; 12:11; 14:5; 14:28; 15:4; 17:7) 그 질문의 끝을 7절 까지라고 말한다. 7절까지의 대답은 간청하는 친구를 버려둘 수 없을 것이다!”이며 이렇게 볼 때에 근동의 손님접대 관습과 일치하며 이 비유의 핵심이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 대답은 8절로 이어지는데 간청하는 친구가 아닌 간청을 들어주는 친구가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8avnai,deia의 해석문제인데 이 부분은 아래서 다루겠음) 들어줄 것이라 말한다. 예레미아스는 이 비유의 핵심은 간청함이 아닌 간청의 확실한 성취에 있다고 본다.

키스트메이커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끈질김”(8avnai,deia)으로 번역하여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교훈을 주는 비유로 해석하고 있다.

존 팀머는 하나님 나라 방정식에서 본문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이고 하나님은 신뢰할 만한 분이며 누가복음 1111-13절에 의해 보증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비유는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강조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비유를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들어주실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존 놀랜드는 누가복음5-13절을 1-4절인 주기도문의 해설로 본다. 그리고 5-7절은 청자에게 한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와서 떡을 구하러 온 친구를 그냥 돌려보낼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는 구절로써 부정적인 대답을 전제하고 8절에서 우정이 먹혀들지 않는 한층 더 예기치 않은 경우를 다룸으로써 이러한 판단을 강화시킨다고 보고 있다. 결국 친구에게 떡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비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이 비유의 역할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청들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주기도문의 기도를 드릴 것을 권하는 것이다. 벗은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우리를 돕고, 때로는 혼합적인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선대한다. 하물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3. 본문의 위치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기도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단어의 사용 빈도수가 다른 복음서보다 높다. 특히 본문은 누가의 신학을 반영하는 본문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마태와의 같은 본문을 편집한 것의 차이에서 누가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Q(주기도문 6:9-13)

Q(주기도문 11:2-4)

외식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 등등

밤에 찾아 온 친구 비유(11:5-8)

Q(구하라 7:7-11)

Q(구하라 11:9-13)

본문은 누가의 특수자료인 누가 여행기 중 기도 단락으로 구분되는 111-13절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기도 단락은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1-4절은 주기도문(Q)이고 5-8절은 비유이며 9-13절은 아버지에게 구하라(Q) 이다. 여기서 다시 비유만 놓고 본다면 5-7절은 질문이고 8절은 대답 혹은 비유의 결론으로 볼 수 있다.

1절부터 13절 전체로 본다면 1절은 제자 중 한명이 예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고 그에 대한 답으로 2-4절에 기도를 알려 주신다. 본문인 비유는 2-4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로서 쓰이고 있다.

 

4. 주석

5-7절까지는 주석가들도 큰 이견 없이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주석을 하고 있다. 다음은 가장 정리가 잘 된 예레미아스의 말이다.

 

이 비유는 어떤 팔레스틴 마을의 사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5: 상점은 없고 가정주부가 해뜨기 전에 가족들에게 그날 필요한 빵을 굽는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누구에게 저녁에도 아직 빵이 남아 있는지를 안다. 빵 세덩어리는 오늘날에도 한 사람분의 식사에 해당한다. 그는 단지 그것을 꾸었다가 곧 갚으려고 했을 뿐이다. - 6: 근동지방에서 손님 접대는 절대적인 체면문제이다. - 7: 방해받는 이웃사람의 불쾌함은 이미 호칭의 생략에서(5절과 달리) 표현되어 있다. “이미”(h;dh, 가령 요 19:28에서와 같이): 근동 사람들은 일찍 잔다. 저녁이면 집안은 어둡고, 밤새 켜두는 작은 등잔불은 희미한 불빛을 비칠 따름이다. “문이 이미 닫혔다즉 자물쇠와 빗장을, 각목이나 철장으로 된 빗장을 양쪽 문에 달린 고리에 가로 끼워둔다. 빗장을 여는 것은 번거롭고 힘들며 떠들썩하게 큰 소리를 낸다. “아이들이 나와 함께(metV evmou/) 침소에 누웠으니”: 단칸방으로 된 농부의 집을 생각게 한다. 아버지가 일어나서 빗장을 열면, 집의 높은 부분에 돗자리를 깔고 누운 온 집안 식구에게 방해가 된다. ouv du,namai:“나는 할 수 없다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그렇듯이 나는 원치 않는다이다.

 

8avnai,deia의 해석이 이 비유의 핵심단어라고 생각한다.

avnai,deia는 명사로써 신약성서에는 단 한번 나오는 hapax legomenon이다. 단어 뜻은 간청” “졸라댐”(persistence)파렴치함” “뻔뻔스러움” “부끄러워하지 않음”(shamelessness)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성경 역본별로 조금씩 다르다.

역 본

본 문

개역개정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공동번역

개정판

잘 들어라. 이렇게 우정만으로는 일어나서 빵을 내어주지 않겠지만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겠느냐?

NIV

I tell you, though he will not get up and give him the bread because he is his friend, yet because of the man's boldness he will get up and give him as much as he needs.

RSV

I tell you, though he will not get up and give him anything because he is his friend, yet because of his importunity he will rise and give him whatever he needs.

원 문

le,gw u`mi/n( eiv kai. ouv dw,sei auvtw/| avnasta.j dia. to. ei=nai fi,lon auvtou/( dia, ge th.n avnai,deian auvtou/ evgerqei.j dw,sei auvtw/| o[swn crh,|zei

주석가들도 이 단어에 대한 번역을 다양하게 한다.

율리허는 후안무치함/뻔뻔스러움으로 베르거는 그 목적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수치당하기를 거부하는 무모함, 담대함의 의미로 베일리는 아이도스(수치감 혹은 존중감 이중의 의미)에 부정 접두어가 붙어 아주 긍정의 의미로 파악하는 데 그 뜻을 수치(부정적) 수치감(긍정적)중에서 수치감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프리드릭센은 후안무치함을 암호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누구의 입장을 따라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지만 avnai,deia뒤의 auvtou/를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소유격으로 쓰인 그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밤중에 찾아 온 친구인가? 아니면 자고 있던 친구인가? 결국 avnai,deia가 해석이 되어야 뒷 단어 역시 풀어 가기가 쉬울 것이다. “간청으로 번역할 때 문맥상 문제는 밤중에 떡을 구하는 친구도 아니고 자던 친구 아니다. 떡을 구하는 친구는 사정을 말했을 뿐이고 자던 친구도 자고 있음을 말할 뿐이다. 존 놀랜드에 의하면 간청으로 번역하는 것은 본문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요소를 이 이야기 속에 집어넣어서 읽어 낸 의미인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수치심을 모름” “부끄러워 하지 않음의 의미로 파악해보자. 율리허나 예레미아스는 이러한 번역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번역할 때에 그의(auvtou/)”는 두사람 모두에게 해당한다. 한밤중에 친구를 찾아가는 것은 근동의 문화로 볼 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고 안에서 자던 친구 역시 곤경에 친구를 돕지 않았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져 망신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속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간청함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음으로 바꾸어 해석한다면 8절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로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때 존 놀랜드가 해석하듯이 우리의 요청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1-13절을 읽을 때 8절을 빼고 읽어보자. 7절에서 예상되는 대답을 하게 하시고 9절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신다. 그렇게 읽어감에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다. 그러나 8절에서 간청을 넣어 읽는다면 본문상에서 의미하는 바가 없는 내용을 억지로 삽입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본문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의미마저 왜곡시킴을 볼 수 있다.

 

5. 나오며

밤중에 찾아 온 친구 비유를 세세히 살펴보면서 주석상 난맥이라고 할 수 있는 단어가 있었다. avnai,deia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본문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주석가들도 이 단어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고 또한 어떻게 해석을 해야 전체 본문에 어울리는지도 고민을 해보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비유가 어느 위치에 속했는가 하는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전후 문맥을 떼어서 생각 한다면 avnai,deia를 번역함에 있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앞 절의 주의 기도 부분을 떼어 놓고 뒷 Q자료만을 붙여서 구조를 파악한다면 간청이라 번역하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제자가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예수께서 친히 기도를 알려주시고 비유로써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시며 다시 구하는대로 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속성을 말씀하심으로 주의 기도를 드릴 때 긍정적으로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갖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비유는 앞의 주의 기도를 이해를 하기위한 보조적 장치로써 이해할 때에 본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 비유의 바른 해석은 존 놀랜드가 말한 것이 가장 적절하다 생각된다. 그의 해석을 다시한번 인용함으로 마치고자 한다.

 

이 비유의 역할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청들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주기도문의 기도를 드릴 것을 권하는 것이다.

 

참고문헌은 각주에 있는 문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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